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권-러시아-만주 관계 (문단 편집) === [[국부천대]] 이후 ===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 세력들은 동북 지방(내만주)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이후 국민당이 패배하여 [[국부천대]]에서 공산당을 피해 대만, 팽호 등으로 달아나면서 남은 영역을 지키면서 명맥이 유지될 때 중국 공산당은 내만주를 비롯한 중국 대륙은 중국 공산당의 영역이 되어 중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청을 무너뜨린 중화민국은 만주족을 어느 정도 탄압했었던 반면, 공산당은 주요 활동지역이 동북이자 소수민족에게 평등을 주겠다는 프로파간다로 인해 공산당을 지지했던, 만주족들도 있었으며 반대로 반공이었던 만주족들은 국민당을 지지하는 한족들과 같이 대만으로 도망친 만주족들도 있다보니 중국만큼은 아니되 대만에도 [[만주족]]들이 있다. 하지만 대만에 있는 한족과 만주족의 관계도 갈등은 있는 편이다.] 이후 [[가오강]]을 중심으로 만주 지역은 본격적으로 다시 발전되었다. 한편 신강 북부와 동북지방은 소련과 접했으며, 소련과 처음에는 동맹을 그럭저럭 잘 유지되는 듯했으나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중국은 흐루쇼프의 행동들을 비난하며 관계가 안 좋아져 소련이 아닌 중국식 사회주의로 가겠다고 했으며, 냉전 시기, 사회주의권의 제2 세계에서는 친소파와 친중파로 갈라졌다. 이런 [[중소결렬]] 갈등들은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일어났던 [[중소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만주 지역에서 분쟁이 심했는데, 중국에 대한 반발, 연해주에 살던 중국인들 및 퉁구스계 소수민족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원래 퉁구스어 단어, 중국식 단어로 쓰인 연해주, 아무르 강 유역의 도시나 마을, 그 외 장소들의 지명들은 러시아식으로 모두 바뀌었다. 그래도 일부 정도가 퉁구스식 이름으로 불리거나 유래된 지명들이 조금 남아있는 편이다. 분쟁이 끝난 이후에는 소규모, 제한적 무역 정도만 좀 있었다가, 관계 개선과 냉전이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 중국과 러시아는 이곳에서 여러 방면에서의 교류와 왕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만저우리]] 시에는 중러, 몽골 간의 문화 교류가 이어지고 있고, 두만강 일대는 북중러 3개국 간의 국경이다보니 여기서도 해당 국가들의 사업들, 노동자들이 오거나 무역도 있다. 하얼빈과 [[헤이룽장성]]은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기도 하며,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 [[아무르 주]]에서도 중국인, 원주민들인 만주족들이 이주해오고 [[통혼]] [[혼혈]]이 생기기도 했다. 그 외 일부 만주족들은 [[홍콩]]이나 [[마카오]]로 이주하기도 했으며 이들은 서구권의 영향으로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믿는다. 2006년에도 헤이룽장성과 연해주를 통해 국경무역이 활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12/0000031189|#]] 그리고 만주리와 자바이칼스크는 철도가 이어져 있는 것 외에도 교류도 활발하다. [[http://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81|#]] 2015년 하얼빈에서 최대 규모의 러시아 테마파크가 조성되었다. [[https://news.g-enews.com/ko-kr/news/article/sh/201501300614290134983_1/%EC%A4%91%EA%B5%AD+%EC%B5%9C%EB%8C%80%EC%9D%98+%EB%9F%AC%EC%8B%9C%EC%95%84+%ED%85%8C%EB%A7%88%ED%8C%8C%ED%81%AC+%ED%95%98%EC%96%BC%EB%B9%88%EC%97%90+%EC%A1%B0%EC%84%B1.html?md=20150226005449_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